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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한국 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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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大韓民国
일본국
日本国
2025년 기준이다.
목차
1. 개요2. 외교공관
2.1. 주한국 일본 대사관2.2. 주일본 한국 대사관
3. 무역

1. 개요 [편집]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정리한 문서이다.

2. 외교공관 [편집]

2.1. 주한국 일본 대사관 [편집]

주한국 일본 대사관은 서울에 위치해 있다. 산하에 다음의 영사관이 있다.
  • 주부산 일본 총영사관
  • 주제주 일본 총영사관

2.2. 주일본 한국 대사관 [편집]

주일본 한국 대사관은 도쿄에 위치해 있다. 산하에 다음의 영사관이 있다.
  • 주고베 한국 총영사관
  • 주나고야 한국 총영사관
  • 주니가타 한국 총영사관
  • 주삿포로 한국 총영사관
  • 주센다이 한국 총영사관
  • 주오사카 한국 총영사관
  • 주요코하마 한국 총영사관
  • 주후쿠오카 한국 총영사관
  • 주히로시마 한국 총영사관

3. 무역 [편집]

1503년에 조선에서 연은분리법이 개발되어 은 생산량이 증가했다. 하지만 1539년에 유서종에 의해 연은분리법이 일본으로 유출되었고, 일본의 은 생산량이 크게 증가했다. 결국 조선이 일본에서 은을 수입하게 되었다.

1621년에 일본의 에도 막부는 화약의 원료인 유황의 수출을 엄금했다. 이때 조선은 북벌 준비로 인해 군사력 강화를 위한 화약 확보가 시급했고, 두모포 왜관을 통한 화약의 정식 수입이 차단된 상황이었다. 이에 조선의 좌익정 원두표와 비변사가 역관에게 명하여 일본의 상인으로부터 유황을 밀수하도록 지시했고, 일본의 부호였던 이토 고자에몬이 밀수선을 몰고 가덕도와 용초도에서 밀무역을 했다. 그러나 이는 에도 막부에 적발되었고, 이토 고자에몬을 비롯한 40명 이상의 사람들이 처벌받았다. 또한 발각 이후 조선은 이를 부인했으나 일본의 진상 조사 요구에 직면하게 되었다. 결국 일본의 요구에 따라 조선은 초량 왜관을 건설했다. 다행히 이익립이 경주에서 유황을 발견하여 조선은 유황을 생산하게 되었다.

초량 왜관이 건설된 이후, 조선에서 일본인들은 동래시사의 승인을 받아야 조선에서 무역을 할 수 있었다. 2m 이상의 돌담과 6개의 복병소를 통해 밀무역이 원천 차단되었고, 일본인들은 가족을 동반하여 조선에 입국할 수 없었다. 또한 왜관에는 조선인 여성이 출입할 수 없었고, 일본인과의 성관계, 즉 교간이 엄금되었다. 1711에 체결된 교간약조에는 왜관에서의 조선인과 일본인의 성관계에 대한 처벌이 규정되어 있고, 1746년에 편찬된 속대전에는 여성을 왜관에 들여 보낸 사람은 참수형을 하고 해당 여성은 곤장 100대 및 유배를 보내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1859년에 좌수영 퇴비 금홍이 김용옥을 따라 초량 왜관에 들어가 이시다 도지로와 성관계를 맺었다. 결국 유인한 김용옥은 효시되었고, 금홍은 곤장을 맞은 후 섬으로 유배되었다.